Memorial Carnival –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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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galactic Memorial Carnival for DAVID GRAEBER

이 글은, 너무나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데이비드 그래버를 기리기 위해 전세계를 아우르는 추모 카니발에의 초대장입니다. 그의 아내 니카와 몇몇 친구들이 발신합니다.

데이비드는 작은 그룹의 친구들이 검은 양복을 입고 모여 긴 칭찬을 늘어놓는 장례식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개인적 명예가 아니라 혁명을 위해, 세상을 뒤집기 위해 살았던 데이비드에게 있어 과거, 그리고 자기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 슬픈 장례식은 어색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한편, 지금, 데이비드가 우리 삶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지금이야말로, 그를 기억하기보다 그의 사상을 살아내기 좋은 시간일 것입니다. 데이비드에게 있어 아나키즘은 정체성이 아니라 “당신이 하는 무엇”이기에, 이 실천적이고 장난스러운 정신 안에서 우리는 데이비드를 위한 추모 카니발을 조직하기로 했습니다. 신비하고 재밌는 미래를 위한 카니발, 연대가 흘러넘치는 카니발을요. 카니발의 주제는 죽음 앞에서 웃는 것 입니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일이죠. 모두 알다시피 데이비드는 농담을 좋아했습니다. 사실, 그가 남긴 최후의 말도 농담이었구요.

고양이 같은 데이비드. 그는 무수한 삶을 살았습니다. 트위터나 책, 혹은 강연에서 그를 만난 많은 사람들은 곧 그의 친한 친구, 가족, 대화상대가 되었죠. 데이비드의 친구들 중엔, 서로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포르토벨로가의 각양각색의 주민들, 외톨이 블로거들, 대학교수들, 비자가 없는 이주민들, 다양한 세대의 활동가들, 예술가들, 록음악가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 -학생, 반항자들, 사회운동의 일원들. 그들 모두, 데이비드가 자기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그와 함께 작업하고 그의 곁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마치 5만명의 형제자매, 20만명의 절친을 가진듯 했던 데이비드이기에, 그의 추도 카니발은 그와 함께하고 싶은 모두가 참여할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그가 즐겨찾던 도시, 베니스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옷을 차려 입는 것을 좋아했어요. 베니스에선 매번 가면과 의상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관광 상품이 되어버리기 전, 베니스 카니발은 급진적 민주주의의 정치적 공간이었습니다. 카니발 기간엔 흑인도, 백인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름다운 사람도, 못난이도, 빈자도, 부자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가면이었죠.

90년대와 2000년대의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활약한 그는 카니발과 반란 사이의 부정할수 없는 유사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9년 전 오늘인 9월 17일, 초대장이 접수되고 하나의 운동이 탄생했습니다. 초대장의 메시지는 단지 “월가를 점령하라. 텐트를 가져올 것”. 데이비드는 이 초대에 조직과 점령으로 응답한 수만명 중 한사람이었고, 나머지가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을 초대합니다. 10월 11일 일요일 당신이 어디에 있건, 데이빗을 위한 기념 카니발을 조직해주세요.

아큐파이 운동의 오픈 마이크 원칙에 영감을 받아, 카니발의 어느 순간 민중들이 말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공간을 열어줄것을 요청합니다. 이 어셈블리는 데이비드의 삶과 말에서 받은 영감, 그리고 그것들을 지금부터 시작될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구체화할수 있는지 (데이비드의 표현으로는, “당신이 마치, 이미 자유로운 것처럼 살기”)에 대한 것입니다.

당신이 혼자 방에 틀어 박혀 좋아하는 데이비드의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든, 대규모의 집회로 거리를 점령하고 싶은 활동가이든, 세미나실에 모인 학자의 모임이든, 최전선의 투사이든, 당신이 있는 곳이 스쾃이든, 인류학 필드이든, 농성현장이든, 박물관이든, 어디든, 누구든 이 추도 카니발을 개최할수 있습니다. 다만, 간단한 규칙이 있습니다. “마스크를 들고 올 것” (물론, 코로나 스타일보다는 카니발 스타일로.)

이미 뉴욕의 주코티 공원, 로조바, 자드, 한국, 호주, 베를린, 런던 등에서 수십개의 행사계획이 진행중입니다. 당신이 행사를 기획할 생각이라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주세요. 사람들이 참여할수 있도록 온라인에 게시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념 카니발의 온라인 스트리밍 또한 조직할 겁니다. 자세한 내용, 수많은 시차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들은 이후 다시 공지할게요.

이메일: carnival4david@riseup.net 애도와 조직 속에서,
니카와 친구들.

(Translation by Didi)

Here are the locations where the Memorial Carnival 4 David is planned to take place. If you want to participate, please, look for comrades near you, whom you might join. But you can participate in the carnival via zoom, on your own balcony, from your apartment with family or friends, or create a new group in a place where there is no Carnival4David yet.

Just send us your name (or nickname), a place where you want to be on October 11 (don’t’ send a specific address, just the name of the town or district of the town if it is big). We respect your privacy and suggest you make up a special email just for this case.

David Graeber and those of us in Japan and Korea

데이비드 그레이버,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우리들

デヴィッド・グレーバーと東アジ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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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his first visit to Japan and Korea in 2006, David Graeber nurtured rapport with activists and intellectuals beyond the narrow confines of academia and the publishing industry. His engagement contributed to creating connectivity among antiauthoritarian struggles by way of personal exchanges, drawing divergent maps and constellations. He was a friend and comrade for many of us in Japan and Korea. In order to share our indispensable experiences with David in multiple languages, three of us have decided to ask those who had spent times with him through seminars, protests and other exchanges to contribute two pieces of writing, a short memoire and a longer account. We are hoping to translate as many short pieces as possible into English by the time of the Carnival; meanwhile, the longer texts will be collected and translated for future distribution. Hajime Imamasa
Sabu Kohso
Norihito Nakata kor

2006년 처음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이래 데이비드는 학회와 출판계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많은 활동가 및 학자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직접적인 하나 하나의 관계를 통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반권위주의 투쟁들을 연결시켰고, 지도 밖의 지도, 움직이는 별자리를 그려냈다. 그는 이곳 극동에 있는 우리들의 친구이자 동지였다. 그와의 소중한 경험들을 여러 언어로 공유하기 위해 우리는 데이비드와 함께했던 여러분에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세미나, 농성, 또 다른 순간들을 통해 그와 함께 했던 기억을 담은 글을 써주시기를 바란다. 짧은 추도문과 좀더 긴 서술이라는 두 가지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짧은 글들을 카니발때까지 영어로 번역하려한다. 한편, 긴 글들은 이후 배포될 수 있도록 작업을 이어가려고 한다. 이마마사 하지메
고소 사부
나카타 노리히토 jpn

デヴィッド・グレーバーが初めて日本と韓国を訪れたのは2006年のことでした。かれはそれ以来、大学や出版産業の狭い世界にとどまることなく、活動家や知識人たちと親密な関係を育んできました。かれは個人的な交流をとおして、さまざまな反権威主義的闘争のつながりをつくり、どこまでも拡がっていくような地図や星座を描いていきました。かれはこの東アジアに住むたくさんのわたしたちの友人であり、同志だったのです。かれとのかけがえのない経験を多言語で共有するために、わたしたち三人は、デヴィッドとともにさまざまな時間を過ごしてきた人びとに声をかけ、二つの文章――短い追悼と長い報告――を書いてもらえないかと頼むことにしました。そのなかには、かれとセミナーや抗議行動をともにした人もいますし、別のかたちの交流をした人もいます。わたしたちは追悼カーニバルまでに、できるだけ多くの短い文章を英語に訳したいと思います。より長い文章についても、近い将来に届けられるよう、作業をつづけていくつもりです。 今政肇
高祖岩三郎
仲田教人